서 론
탄소가 기업의 수익성과 생존력을 좌우하는 시대, 유럽연합(EU)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강력하게 탄소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은 그 변화의 핵심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EU 배출권거래제(EU ETS)는 유상할당 비중이 확대되고, 탄소국경세(CBAM)는 보고 의무를 넘어 실질적 비용 부담 단계로 진입하며, 지속가능 공시지침(CSRD)에 따라 탄소 회계 및 공급망 정보 공개 의무도 확대됩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환경 규제를 넘어, 수출과 투자의 판도를 바꾸는 주요 변수입니다. 이 글에서는 2025년 EU 탄소 정책의 핵심 변화와 기업들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전략 포인트를 정리합니다.
1. EU ETS 개편과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의 영향
EU 배출권거래제(EU ETS)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규제형 탄소시장으로, 유럽연합이 2005년부터 운영해 온 온실가스 감축 제도입니다. EU는 이 제도를 통해 일정량의 탄소배출 한도를 기업에 부여하고, 배출권을 초과하거나 남는 만큼 시장에서 거래하도록 허용합니다. 이 제도는 2021년부터 시작된 제4단계(Phase 4)에 이어, 2025년 이후 더욱 강화된 제도 개편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유상할당 비중 확대입니다. 현재 일부 산업군에는 배출권이 무상으로 할당되고 있지만, EU는 탄소중립 목표에 맞춰 유상할당 비율을 점차 높이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 시멘트, 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은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의 도입과 연계하여 무상할당 축소가 예고돼 있으며, 2026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유료화 전환이 이루어질 전망입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비용을 고정비 구조에 반영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21~2023년 사이 EU ETS의 톤당 배출권 가격은 약 30유로에서 90유로 이상까지 급등했으며, 2024년 이후에도 정책 강화, 공급량 축소, 시장투자 증가 등의 요인으로 인해 가격은 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EU는 연간 총 배출허용량(Cap)을 4.3%씩 감축하는 ‘선형 감축계수(LRF)’를 2024년부터 적용하고 있어, 공급량 감소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구조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유럽 내 기업들만의 이슈가 아닙니다. 유럽에 수출하거나 현지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한국, 일본, 미국, 중국 등 주요 기업들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출권 가격이 높아질수록 생산 비용은 증가하며, 에너지 효율이 낮은 사업장은 수익성 저하 또는 구조조정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따라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내부 탄소가격제(Internal Carbon Pricing)’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이 스스로 탄소배출에 가격을 매기고, 투자나 사업 운영 시 그 비용을 반영하는 시스템입니다. EU ETS의 실질적 탄소 가격을 반영해, 톤당 50~150유로 수준의 내부가격을 설정한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탄소배출량이 많은 사업은 구조적으로 리스크 자산으로 분류되는 추세입니다.
또한 기업의 공급망 관리 전략도 재편되고 있습니다. 유럽 내 생산법인은 배출권 직접 구매의무가 있지만, 제품 수출을 위한 아웃소싱 생산 기업들도 간접배출량에 대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합니다. 유럽의 바이어들은 이미 배출권 비용을 납품단가 협상에 반영하고 있으며, 탄소배출이 많은 원재료나 중간재 공급자는 거래에서 제외되거나, 가격 인하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EU ETS의 개편은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니라, 기업 경영 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 도입, 에너지 전환, 제품 전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으며, 탄소 데이터 관리 및 가격 리스크 분석 역량이 기업의 ESG 성과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생존력 자체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2. CBAM의 본격 시행 – 수출 기업에 직접 타격
2025년은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가 전환기(Transition Phase)를 마치고 본격적인 과세 단계로 진입하는 전환점입니다. CBAM은 EU 역내 기업들이 배출권 비용을 부담하는 만큼, 역외 수입품도 동일한 탄소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제도로, 탄소누출(Carbon Leakage)을 방지하고 글로벌 감축 책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새로운 무역 장치입니다.
CBAM은 2023년 10월부터 전환기가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적용 품목에 대해 직접배출량 보고 의무만 부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26년부터는 실질적인 크레딧 구매 및 납부 의무가 부과되며, 수입업체는 해당 제품의 배출량을 EU ETS 기준에 따라 산정하고, 상응하는 수준의 탄소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상 제품별 탄소세가 부과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며, 유럽 수출기업에게는 새로운 비용 항목으로 작용합니다.
현재 CBAM 적용 품목은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전력, 수소의 6개 고탄소 산업군에 한정되어 있지만, EU는 향후 자동차, 플라스틱, 섬유, 화학 등으로 확대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철강 및 알루미늄은 한국의 대EU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으로, 포스코, 현대제철, 고려아연, 동국제강 등 주요 기업들이 이미 CBAM의 영향을 받고 있거나 준비 중에 있습니다.
CBAM이 부과하는 탄소비용은 단순히 EU ETS 시장가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출국의 탄소정책이 EU ETS 수준과 동등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상계조정(Corresponding Adjustment)을 인정하지 않고, 전액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한국의 배출권 가격이 EU보다 낮고, 무상할당 비중이 높다면, 실질적으로는 이중 부담 구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CBAM은 직접배출량뿐 아니라 간접배출(Scope 2, 전력 소비에 따른 탄소 배출)까지 향후 포함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공급망에 있는 중소·중견 부품기업까지 규제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EU는 2025년 말까지 간접배출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발표한 뒤, 적용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며, 이미 일부 바이어는 선제적으로 간접배출 정보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출 기업 입장에서 가장 시급한 대응 과제는 제품 단위의 탄소배출량 정량화입니다. CBAM은 제품별 배출량 데이터를 국제 인증 기준에 따라 산정하고, 제3자 검증을 통해 제출하도록 요구합니다. 따라서 기업은 생산공정의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탄소계수와 원료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탄소 회계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기존의 전사적 관리체계(ERP)와 연동된 탄소정보 통합 플랫폼이 필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CBAM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탄소정책 정비와 EU와의 외교적 협상이 병행돼야 합니다. 특히 한국 ETS의 유상할당 비율과 배출권 가격 수준이 EU ETS와 크게 차이 나는 상황에서, 상계조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으면 한국 수출 기업은 경쟁력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K-ETS 가격 인상, 무상할당 단계적 축소, 상호인정 협상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CBAM은 단순한 탄소세가 아닌, 유럽 수출에 실질적인 가격 경쟁력 변화와 행정적 대응 부담을 동시에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2025년은 마지막 전환기로서, 기업이 대응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는 사실상 유예된 ‘골든타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2026년부터는 비용과 신뢰를 동시에 잃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 탄소 회계·공시의무 확대와 지속가능 공시법(CSRD)
2025년 EU 탄소정책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변화는 지속가능 공시의무의 전면 확대입니다. 기업의 탄소배출 현황과 지속가능 경영 전략을 체계적으로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이 흐름은 단순한 투명성 확보를 넘어, 탄소 리스크를 투자와 금융의 핵심 지표로 편입시키는 구조적 전환을 의미합니다. 핵심 제도는 바로 EU CSRD(지속가능성 공시지침,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입니다.
CSRD는 기존의 비재무 정보공시 지침(NFRD)을 대체하면서 적용 범위와 정보 수준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2024년부터는 유럽 상장 대기업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는 비EU 기업까지 적용 범위가 확대됩니다. 매출 1억5천만 유로 이상, EU 내 자회사 보유, 일정 기준 이상의 종업원 수를 충족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면 유럽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CSRD 공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기업 다수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으며, 유럽에 진출한 제조·IT·소재 기업은 실질적인 보고의무를 갖게 됩니다.
CSRD는 단순한 ESG 공시 수준을 넘어서, 탄소 회계 정보를 정량화하여 보고할 것을 요구합니다. 특히 Scope 1(직접배출), Scope 2(전력 사용에 따른 간접배출), Scope 3(공급망 등 기타 간접배출)까지 전 범위 탄소배출량을 측정·공개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지속가능성 리스크 분석, 감축 목표, 실행계획, 진척도까지 연계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존의 ‘선택적 ESG 공개’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정량 데이터 기반의 회계 체계로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특히 2025년부터 CSRD의 세부 기준인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가 본격 적용됩니다. ESRS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 전 영역의 세부 항목을 규정하며, 그중에서도 기후 변화 대응(E1) 기준은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량과 탄소감축 계획을 어떻게 수립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고하도록 요구합니다. 이는 단순 보고를 넘어서 기업 전략과 경영방식의 변화까지 유도하는 강제력이 있는 공시제도입니다.
CSRD 대응을 위한 기업의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탄소 회계 시스템 구축입니다. 제품별, 공정별, 사업장별 배출량을 측정하고 범위별(Scope 1~3)로 분류·정리할 수 있는 정량 분석 체계가 필요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팀 업무가 아니라, 회계, 재무, 법무, 공급망 부서와 연동되는 통합 관리 구조를 의미합니다.
둘째, ESRS 기준에 맞춘 리스크 관리 체계와 목표 수립 로직 정비입니다. 감축 목표는 과학기반(SBTi),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 등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가져야 하며, 탄소감축 결과에 따라 투자자와 금융기관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셋째, 공급망 탄소데이터 확보입니다. Scope 3 범위가 넓어지면서 1차 협력업체뿐 아니라 2·3차 하청까지 배출량 정보를 요청하고 검증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데이터 플랫폼, 교육, 계약 조항의 정비가 병행돼야 합니다.
CSRD 공시는 단순한 형식적 제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계법인 등 외부 감사인이 검토하고, 허위 또는 부정확한 보고에 대해서는 제재가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기업은 실질적 대응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브랜드 리스크는 물론 법적 리스크까지 감수해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CSRD는 단순한 보고서 작성이 아니라, 기업 경영의 기준을 ‘탄소 중심 회계와 지속가능 전략’으로 재편하는 제도적 압력입니다. 유럽 시장을 겨냥하거나 유럽 투자자와 연결되어 있는 기업이라면, 지금부터 탄소정보 수집 시스템과 공시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 론 - 2025년 EU 탄소정책은 단순한 규제를 넘어, 기업 경쟁력의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
ETS 개편, CBAM 시행, CSRD 확대 등 유럽연합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들을 제도적·경제적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 변화가 무역 장벽이 될 수도, 새로운 ESG 기회가 될 수도 있는 분기점입니다. 이제는 선택적 대응이 아닌, 경영 전반에 걸친 탄소 전략 정비와 투명한 정보 관리 체계 구축이 필수입니다. 2025년을 단순한 규제의 해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저탄소 시장에 선제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전략적 전환점으로 활용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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