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항공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3%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요 증가에 따라 그 비중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16년, 국제 항공 탄소배출 증가분을 상쇄하기 위한 글로벌 제도인 CORSIA(국제항공 탄소상쇄 및 감축 제도)를 도입했다. CORSIA는 2021년부터 자발적 참여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의무 적용 국가를 확대하며 국제항공의 탄소 감축을 이끌고 있다. 이 제도는 국제선 운항 기업에 직접적인 감축 책임을 부과하며, 항공사가 반드시 이해하고 대응해야 할 글로벌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본 글은 CORSIA 제도의 구조, 운영 방식, 그리고 항공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정리한다.
1. CORSIA란 무엇인가 – 제도 도입 배경과 원칙
CORSIA(Carbon Offsetting and Reduction Scheme for International Aviation)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2016년 총회에서 채택한 국제 항공 전용 탄소상쇄 제도다. 이 제도는 항공 산업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분을 상쇄하고, 장기적으로는 항공업의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CORSIA는 국제선 항공편에 한정해 적용되며, 국내선이나 군용, 인도적 항공 운항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도입 배경은 명확하다. 항공운송 수요는 매년 평균 4~5%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료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량도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업 특성상 단기간 내 기술 기반 감축이 어렵고, 연료 대체 수단도 제한적이다. 이에 따라 ICAO는 시장 기반 메커니즘(MBM)을 활용해 배출량 증가분을 탄소상쇄 방식으로 보완하는 모델을 도입했다. CORSIA는 국제항공에 대해 탄소중립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글로벌 합의의 산물이다.
제도의 기본 구조는 이렇다. 2020년을 기준 연도로 설정하고, 그 이후 해마다 발생하는 국제항공 부문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량을 상쇄 대상으로 본다. 예를 들어, A 항공사가 2023년에 10만 톤의 CO₂를 배출했고, 2020년에는 8만 톤이었다면, 증가분인 2만 톤에 대해 상쇄 의무가 발생한다. 이러한 상쇄는 공인된 탄소크레딧을 구매하거나 인정된 감축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이행할 수 있다.
CORSIA는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 2021~2023년은 ‘자발적 참여단계(Pilot Phase)’로, ICAO 회원국 중 원하는 국가가 자율적으로 참여했다.
- 2024~2026년은 ‘1차 의무단계(First Phase)’로,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다수의 항공사 보유국에 적용된다.
- 2027년 이후는 대부분의 국제항공 운항국을 대상으로 의무 적용이 확대된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119개국 이상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국제항공 배출량의 약 80% 이상을 포괄하고 있다. 한국도 자발적 참여국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항공사가 이미 감축 준비 및 보고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CORSIA는 단순한 상쇄 제도를 넘어, 글로벌 항공사의 지속가능 전략과 직결되는 제도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감축 대상은 개별 항공사가 맡고, 이행 책임 또한 항공사에 귀속된다. 각국 정부는 CORSIA 이행 상황을 ICAO에 보고하고, 해당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가별 상쇄 의무를 집계한다. 이 과정은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MRV(측정·보고·검증) 시스템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CORSIA의 도입은 항공 산업에도 분명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는 항공 연료 효율 개선이 감축 전략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탄소크레딧 확보, SAF(지속가능 항공연료) 도입, 배출량 관리 시스템 구축 등 다각적 전략이 필수가 되고 있다. CORSIA는 단순한 의무 제도를 넘어, 항공업의 기후 리스크 대응 체계 정착을 유도하는 글로벌 규범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CORSIA의 운영방식 – 배출 측정, 감축 의무, 크레딧 기준
CORSIA 제도의 핵심은 정확한 배출량 측정과 투명한 상쇄 방식에 있다. 국제선 항공기에서 발생하는 CO₂ 배출을 정량화하고, 그 증가분에 대해 탄소상쇄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공인된 크레딧을 통해 이행하는 구조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 ICAO는 MRV 체계, 즉 측정(Measurement)–보고(Reporting)–검증(Verification)의 3단계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측정 단계에서는 각 항공사가 자사 항공편의 연료 사용량을 기록하고, 이를 CO₂ 배출량으로 환산한다. ICAO는 연료 종류별 탄소계수를 정해두고 있으며, 항공사는 실제 운항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간 배출량을 산출한다. 보고 단계에서는 이를 표준 양식에 따라 각국 정부에 제출하며, 검증 단계에서는 제3자 인증기관이 해당 데이터의 정확성을 평가하고 보고서를 승인한다. 이 일련의 과정은 매년 반복 수행되며, 항공사 차원의 정밀한 연료·배출 관리체계 구축을 요구한다.
감축 의무는 ‘증가분 상쇄’ 원칙을 따른다. 기준 연도는 원래 2020년으로 설정되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국제항공 수요가 급감한 관계로, 2021~2023년 기간 동안은 2019년 배출량을 기준 연도로 한시 적용했다. 이후 2024년부터는 참여국들의 배출 평균값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조정된다. 이는 항공사 간 형평성과 국제 시장 변동성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상쇄 대상이 되는 크레딧은 ICAO가 사전 승인한 감축 프로젝트에서 발행된 것만 인정된다. 이 프로젝트들은 추가성(additionality), 영속성(permanence), 이중계산 방지(additional safeguards)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이 사용되고 있다.
- Verra(VCS), Gold Standard, ACR, CAR 등 민간 인증기관 발행 크레딧
- 산림보호, 재생에너지, 메탄 감축, 청정요리 기술, 토양 탄소 등 다양한 프로젝트 유형
- ICAO 산하 TCO2(Taskforce on CORSIA Offsets and Emissions Units)가 정한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사용 가능
항공사는 연간 상쇄 의무량을 충족하기 위해 일정 수의 크레딧을 구매한 후, 이를 ICAO 지정 플랫폼을 통해 등록·소각(retire)해야 한다. 이 과정은 국가가 아닌 항공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탄소크레딧 수급 전략과 가격 대응 전략이 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구조다.
또한, CORSIA는 배출권 거래제(EU ETS 등)와 달리 배출허용 총량을 사전에 정하지 않으며, 탄소가격도 시장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이 점에서 CORSIA는 완전한 시장 기반 제도는 아니지만, 시장 메커니즘을 활용한 국제적 탄소관리 모델로 평가받는다. 감축 의무를 단일 국경이 아닌 국제노선 단위로 적용한다는 점에서도 독자적 구조를 갖는다.
한편, 탄소상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ICAO는 지속가능 항공연료(SAF: Sustainable Aviation Fuel) 도입을 장려하고 있으며, SAF 사용량만큼 배출량을 감축 인정하는 방안을 병행하고 있다. SAF는 바이오매스, 폐기물, 수소 기반 합성연료 등에서 생산되며,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배출이 최대 80%까지 낮다. 현재는 가격과 공급량 제한으로 도입이 미미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크레딧 중심 구조에서 연료전환 중심 구조로의 전환이 예상된다.
결국 CORSIA의 운영방식은 단순히 의무를 부과하는 구조가 아니라, 항공사에게 데이터 역량, 감축 전략, 크레딧 운용 능력, 기술 도입 계획을 모두 요구하는 복합적 제도다. 항공사는 MRV 기반 배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뢰성 높은 감축 프로젝트를 파악하며, 장기적으로는 SAF 도입까지 고려하는 포괄적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3. CORSIA의 국제 영향력 – 항공사와 국가의 대응 과제
CORSIA는 국제 항공부문에 특화된 최초의 탄소감축 메커니즘으로, 전 세계 항공산업의 구조와 전략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일 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 차원의 상쇄 제도를 설계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 제도는 단순한 감축 의무를 넘어 국제항공시장 진입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은 항공사들의 비용 구조에 나타난다. CORSIA가 상쇄 의무를 부과함에 따라, 항공사는 연료 비용 외에 탄소상쇄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2024년 이후 상쇄 대상 노선이 확대되면, 중장거리 국제선 운항 비중이 큰 항공사일수록 재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탄소크레딧의 시장가격이 변동성이 크고, 고품질 크레딧의 확보가 어려워질 경우, 감축 비용은 매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주요 글로벌 항공사들은 이미 탄소 크레딧 구매 전략과 SAF 도입 계획을 병행하고 있다. 아메리칸항공, 루프트한자, 싱가포르항공 등은 자체적으로 SAF 공급망을 확보하거나, 감축 프로젝트에 선제 투자하며 장기 대응 체계를 구축 중이다. 이들은 MRV 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내부적으로 ‘톤당 탄소비용’을 반영한 의사결정 구조까지 정비하고 있다. 항공사 간 탄소비용 대응 역량이 경쟁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대응이 시급하다. 항공사는 CORSIA에 따라 직접 상쇄 의무를 지지만, 배출량 보고와 이행 자료는 각국 정부가 ICAO에 제출해야 한다. 이는 정부의 행정 능력과 정책 설계 수준이 국제 신뢰도에 직결됨을 의미한다. 또한, 자국 항공사의 상쇄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탄소크레딧 확보, SAF 기술 지원, 제도 정비가 병행돼야 한다.
한국은 자발적 참여국으로 CORSIA에 동참하고 있으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항공사가 이행 체계를 운영 중이다. 그러나 감축 프로젝트 발굴과 SAF 도입 측면에서는 아직 선진국 대비 준비 수준이 낮은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SAF 생산시설을 확충하고, K-ETS와의 연계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민간 항공사와 공동으로 국내 감축 프로젝트를 CORSIA 인증 대상으로 전환하는 협업 모델도 필요하다.
아시아 지역 전체로 보면, CORSIA 참여율은 높지만 이행 수준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일본, 싱가포르, UAE 등은 자체적인 SAF 전략과 배출 관리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으며, 크레딧 유통 인프라도 정비되고 있다. 반면, 일부 개발도상국은 MRV 시스템이나 국제 인증 기반이 부족해 실질적 이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ICAO는 이를 고려해 기술지원 프로그램과 제도 완화 조항을 함께 제공하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각국의 주도적 대응이 필요하다.
CORSIA는 국제항공의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후정책과 항공산업의 접점을 제도화한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SAF 의무화, 배출 총량 제한 등 추가적 규제 확장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있으며, 그만큼 제도 초기 단계에서 전략을 선제적으로 수립하는 기업과 국가가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결국 CORSIA는 단순한 부담이 아닌, 국제항공시장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었다. 항공사와 국가는 비용 절감 중심의 소극적 대응이 아닌, 감축 자산을 선제 확보하고 기술투자를 병행하는 적극적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결 론
CORSIA는 국제항공의 탄소 배출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된 전 세계 항공사 공통의 탄소상쇄 규범이다. 항공사는 연료 소비뿐 아니라, 배출량 측정과 상쇄 전략 수립까지 포함된 복합적 감축 책임을 지게 되었다. ICAO는 이 제도를 통해 탄소감축을 항공산업의 ‘선택’이 아닌 ‘의무’로 전환시켰다. 크레딧 구매, SAF 도입, 배출 데이터 시스템 구축 등 선제적 대응 역량이 항공사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었다. CORSIA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국제 기준이며, 지금이 전략을 점검하고 투자 계획을 구체화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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